자주 물어봐야 하는 이유 어떻게 살 것인가
구독자님들, 잘 살고 계신가요? 저는 가끔은 유영하듯 즐기고 어쩔 땐 헤매면서 요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저는 6년을 함께 한 관계를 정리하고, 공교롭게 회사도 잠시 쉬고 있습니다. 엄청난 시간의 자유를 느끼고 있지요. 시간의 자유일 뿐일까요. 관계의 자유, 소비의 자유, 등등 모든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곤 하다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아 어지러울 때면 그냥 하염없이 쇼츠를 보며 시간을 채워내곤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활자를 적어내기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질문에 곰곰히 대답해보기 위해서요.
저는 그때 그때에 최선을 다하며,
도전과 향유를 적절히 즐기며,
감각하고 성찰하고 언어로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능한 도전과 향유는 무엇인가. 내가 감각할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어렴풋하게 가닥이 잡힙니다.
4년 전 안정적인 직업인 교사를 그만 둘 때는 저의 질문이 어떤 일을 할 것이가에 갇혀있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질문이 확장됩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대답의 밀도도 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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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기에 자주 물어야 하는 질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한때는 철학자의 전유물이었지만, 요즘은 퇴근길, 브런치, 버스 창밖, 쇼츠 영상 끝에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질문은 늘 어렵습니다. 어렵다는 사실조차 자주 잊고, 그냥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삶의 구조에 묻혀 살게 되지요.
아마도 이 질문이 어려운 건, 한 번 대답했다고 끝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운 시기, 다른 환경, 바뀐 나의 감정과 함께 ‘답’은 자꾸 어제와 달라지고, ‘올바른 삶’이란 말은 어느 방향으로도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정답을 내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시 나를 바라보게 하는 방향의 질문입니다.
삶을 향해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가, 내가 내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를 묻는 방식입니다.
그 질문을 계속 꺼내는 사람이 더 잘 사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덜 휩쓸리고 덜 잊히는 사람일 수는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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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은 질문
오늘 하루,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작게라도 방향을 주는 단어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그게 ‘차분하게’, ‘진심으로’, ‘도전하면서’처럼 막연하더라도 괜찮아요. 그 단어를 종일 붙들지 않아도 괜찮고, 그 단어대로 살지 못해도 괜찮아요.
다만 그 단어를 한 번 떠올렸다는 사실이, 하루의 작은 기준 하나를 만들어줄 수 있어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오늘은 어떤 방향으로 살았던 하루였는지 잠깐만 다시 떠올려보세요.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어도, 살아가는 감각은 분명히 달라질 거예요.
괜찮으시다면, 메일로 답장을 주셔도 좋아요. 제 글과 결이 맞는 소중한 구독자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래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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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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